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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more] ‘세잔의 사과’와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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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more] ‘세잔의 사과’와 현대미술

도병훈(미술작가)

오늘날 우리가 하루 동안 경험하는 현란하고 다양한 시각의 세계는 100년 전의 사람이 일생동안 경험하는 것보다 양적으로 더 풍부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은 현대의 시각문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넘치는 시각적 정보가 오히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인간의 감각을 편향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르네상스 이래 선형 원근법이 시각 문화의 척도였다. 이 원근법(perspective)이 곧 '관점'을 의미함은 수세기에 걸쳐 서구의 시각문화를 지배하고, 나아가 타자를 대상화해서 정복하게 된 세계사와 무관하지 않다. 현시대는 아무런 기준이 없기 때문에 온갖 이미지가 혼탁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문맥에서 ‘세잔의 사과,’ 즉 폴 세잔( Paul Cézanne , 1839~ 1906)이 그린 사과는 인간의 시지각적 특성과 함께 삶의 근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잔 생전에 그의 그림이 출품되었을 때에는 물감만 떡칠한 그림이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기도 했다. 사물에 대한 재현적 묘사력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 이래 17세기 '오감 정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손으로 만지는 듯한 질감을 묘사하는 수준에 도달했으므로 이런 전통의 연장선에 보면 세잔의 그림은 너무 이상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세잔이 그린《사과와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보면, 우선 테이블의 좌우 높낮이가 천을 경계로 해서 다르고, 테이블 위에 배치된 사과 및 다른 사물들도 투시법적 일관성이 없이 내려다보거나 눈높이로 보는 등 제각각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의 기조는 단일시점의 원근법이었다. 이 그림은 또한 음영이나 명암이 아닌 색채의 차이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대상을 그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색채로 명암이나 음영을 대신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지 않거나 화질이 낮은 이미지로는 알 수 없는 특성이다.



세잔은 원래 인상주의 화가였다.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색채 효과는 인상파의 영향으로 가능했다. 망막에 닿은 시각적 인상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연의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것이었으므로 세계의 실제 모습이란 동일한 형태로 지속될 수 없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을 그리기 위하여 시시각각 현하는 세상의 모습 – 빛이 빚어낸 색채의 차이일 수밖에 없는 – 사물과 세계를 온통 빛의 색채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인상파 그림의 특성은 이전의 미술을 지배해온 고전주의 그림과는 현격하게 달랐다.



고전주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은 순간순간 경험하는 감각적 현상을 초월하는 것에 있다는 '이상미'를 추구했다. 그래서 이상적 비례를 가진 형상을 잘 표현하는 것이 근대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목표였으며, 선형 원근법과 명암법도 각각 3차원적 공간의 표현과 사물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기법이었다.



이처럼 세잔 이전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미술이 존재했다. 세잔은 이 두 가지의 모순 속에서 새로운 방식을 모색했다. 그에게 세상은 빛으로만 환원되는 대상이기 전에 근원적인‘무엇’이었다. 우리의 몸 덩어리는 물론 사과 하나라도 만져 보면 실체적 존재감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존재감은 그림이나 사진처럼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 아닌 '행동 속에서' 좀 더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잔은 고정된 시점의 고전주의 그림도 아닌 사물의 실체적 존재감이 없는 인상주의 화풍도 아닌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것은 주위 세계와 구별되는 기본적인 형태를 다양한 관점을 공존시키되 색채로 형태를 구축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사과와 바구니가 있는 정물》과 같은 색채와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세잔의 그림이 일견 서툴러 보이는 것은, 아니 ‘잘 그린 그림’이기를 거부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잔의 사과'는 세잔 자신과 사과와의 감각적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즉 세잔의 사과란 먹음직한 과일이란 대상으로서의 사과를 '재현(representation)'한 것이 아니라 세잔의 신체적 행동 속에서 경험한 사과를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세잔의 그림은 자신이 말했듯 "감각(sensation)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떤 인물화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게 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순간적인 대상의 생생한 실재는 물론 구조적 탐구가 다 같이 중요했다. 하나하나의 터치는 대상의 실재감과 직결되는 만큼, 세잔은 하나의 터치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톤 하나 이상해도 그림의 전체 질서가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색채와 데생은 결코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색깔을 칠해감에 따라 데생은 견고해지고, 데생이 충실해짐에 따라 색채도 풍부해진다." 라고 한 그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자화상 연작이나 《수욕도》연작들도 현대미술의 깊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주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그의 작업은 회화란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세잔 그림의 어법(idiom)의 특성은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에서도 드러난다.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60여 회나 그렸다. 위 그림은 세잔에 만년에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으로, 우선 납작납작한 붓 터치로써 대상의 입체감을 표현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터치 하나하나는 색으로 된 평면인데, 평면으로 또한 입체감을 표현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보면 무수한 평면에 지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보면 입체이기도 한, 그래서 마치 화면이 이 양자 사이에서 진동하는 듯하다. 이처럼 세잔의 그림은 데카르트적 명료함과 분명함을 배제하고 기하학적 공간에서의 단일한 균형이 아니라 무수한 순간을 고정시킨 다양한 관점들을 색채의 차이로 종합함으로써 평면과 입체 양자 사이의 긴장된 모순 속에 진동하는 비선형적 화면으로 나타난다.



세잔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그의 그림세계를 제대로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시를 본 브라크와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큐비즘(Cubism), 즉 '입체주의' 그림의 성립에 기여한다. 또한 세잔의 그림은 입체파 이전에 성립한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마티스의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회화의 길을 새롭게 추구한 세잔의 모험을 통해 서양근대회화는 비약적으로 달라지며, 이 때문에 그는 현대회화의 예언자, 입법자, 아버지로 평가된다. 그의 그림은 시시각각 유동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실상 그 자체이며, 감각을 실현하는 ‘열린 세계 ’였다. 결국 세잔에 이르러 서구미술은 주체가 대상을 보기 좋게, 또는 아름답게(?) 그리는 차원에서 벗어나,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움직이는 육체의 안구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차원의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평생학습타임즈와 제휴가 되어있는,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발간하는 웹진 ‘더 more’에 실린 글입니다.



<평생학습타임즈 – 타임즈 편집국 lltimes1@daum.net>

출처 - 평생학습타임즈, 장혜연IN학습도시 커뮤니티, 현장소식,201807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