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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간 리뷰] 눈물과 정치 –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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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눈물과 정치 –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소개



눈물이 정치와 왜, 어떻게 결합하게 됐을까?



영화학자 이호걸이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흘려진 눈물과 현실에서 흐른 눈물을 엮으며, 20세기 한국의 문화와 정치, 감정과 이데올로기를 탐구하는 『눈물과 정치』. 저자가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960년대 영화를 하루에 몇 편씩 보던 시절에 시작된 책으로, 지난 세기 한국에서 흘려진 여러 눈물을 제시하며 눈물이 정치와 결합하는 양상에 주목한 정치적 비평이다.



1부에서는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민족주의, 파시즘, 사회주의, 자유주의가 눈물과 관계 맺는 양상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한국 근대 특유의 가족적 눈물의 특성, 원인, 역사를 밝히고 20세기 한국인에게 정치란 어떤 느낌이었는지 밝혀내고자 하며 전환기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정치와 감정을 모색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저자 소개



저자 : 이호걸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의 여러 대학에서 영화에 관해 강의했고,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부산외대 영상미디어학과 조교수 등을 거쳐, 이제는 대학 밖에서 쓰고, 말하며, 행위한다. 한국, 영화, 문화, 대중, 감정, 정치 등이 공부의 주제어다. 눈물과 신파 외에도 식민지기 영화문화, 21세기 한국영화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눈물에 관해 썼으니 앞으로는 폭력, 성애, 웃음 등을 주제로 감각의 연작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공부인생의 실질적 과제는 역시 한국영화의 100년 통사를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압박하고 있다. 연구의 지역적 범위를 아시아로 확장하는 것도 오랜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그 세상을 함께 향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 대중감정과 눈물 비평

두 눈물 | 눈물을 탐구하기 | 대중의 감정 | 눈물 비평 | 눈물과 정치



I. 눈물의 흐름과 근대 한국

1. 눈물이란 무엇인가

왜 눈물인가? | 눈물, 고통, 슬픔 | 눈물과 실천 | 목적을 잃은 눈물 | 눈물과 사회

2. 두 눈물과 신파

홍도의 눈물과 여성윤리 | 복잡한 심리적 사정 | 영진의 눈물과 남성윤리 | 눈물의 흐름과 신파 | 왜 신파인가? | 신파적 주체와 세계

3. 신파와 정치

사회와 배치 | 신파의 배치와 한국사회 | 정치와 이데올로기 | 가부장제의 눈물 | 정치와 가족 | 눈물의 역설과 탈주

4. 근대의 눈물

조선시대의 눈물 | 『사씨남정기』와 『유충렬전』의 눈물과 신파 | 눈물의 전근대적 배치 | 장부의 마음 | 옥련과 유림척로의 공적 눈물 | 수일과 순애의 사적 눈물 | 무정의 시대에서 눈물의 시대로 | 투쟁의 세계관과 내면의 발견 | 사적 눈물과 가족 | 전쟁과 혁명 | 정치적 신파와 공공성 | 근대의 눈물과 정치



II. 눈물의 정치

5. 민족주의와 눈물

눈물의 애국가 | 개인적 눈물과 민족적 눈물 | 민족주의 신파 | 민족과 국민 | 눈물의 민족 | 피식민 약소민족의 설움 | 신파적 민족주의 | 액션영웅들의 눈물 | 눈물의 예술적 승화 | 이산가족 찾기와 민족의 눈물 | 기반적 정치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 | 이탈의 흐름과 해방의 흐름들 | 신파적 민족주의와 파시즘

6. 파시즘과 눈물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 박정희의 민족주의 | 박정희체제와 파시즘 | 눈물의 파시즘 | 〈쌀〉 | 박정희의 눈물 | 파시즘의 미학 | 조국 근대화의 눈물들 | 수기의 정치 | ‘고생의 영화’들과 ‘한강의 기적’ | 파시즘의 눈물 | 박정희의 귀환 | 다른 길들

7. 사회주의와 눈물

덕산골의 눈물과 민중주의 |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 신경향파의 눈물 | 여성신파와 사회주의 | 사회주의 신파 |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의 심성 | 열정의 시대 | 신파적 프로문예의 퇴조 | 북쪽의 눈물 | 눈물의 사회주의 | 김지하의 눈물과 민중주의의 열정 | 민주·민족·민중주의의 문화적 전위 | 불타는 눈물 | 노동 가족의 눈물 |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눈물 | 사회주의의 숭고 | 눈물의 숭고 | 사회주의의 눈물과 자유주의

8. 자유주의와 눈물

〈챔피언〉의 개인주의와 눈물 | 자유주의와 『장한몽』 | 사랑에 울고 돈에 또 울고 | 삼켜진 눈물들 | 국민적 동원의 눈물 | 빼앗긴 자유의 눈물 | 자유민주주의의 눈물 | 국민과 시민 사이 | 시장과 링 | 눈물의 신자유주의적 고갈 | 개인주의의 대두와 가족주의의 변화 | 발리 와 헬조선 사이에서 | 세월호의 눈물 | 자유주의 너머



나오며: 새로운 감정, 새로운 정치

눈물의 시대 | 한국인의 눈물? | 신파적 눈물을 넘어서 | 새로운 정치 | 새로운 감정



주석과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런 감정들 중 자기연민은 타인에 대한 원망, 자책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짝을 이룬다. 이 중 윤리적 실천을 추동하는 것은 두 번째 조합이다. 반면에 첫 번째 조합은 윤리적 궤도로부터의 이탈을 낳을 수 있다. 홍도가 가련하게도 고생하는 것이 다 오빠 탓이고 세상의 탓인데, 자신을 계속 다그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눈물의 코나투스는 한쪽만을 향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대립적 방향이 잠재되어 있다. (48쪽)



신파는 근대 한국의 가부장제가 눈물의 역능을 포획한 결과다. 여성적 눈물이 더 많이 흘렀지만, 남성적 눈물도 함께 흘렀다. 양상은 다르지만 남성도 가부장제적 동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부장제적 정치는 약한 남성에 대한 강한 남성의 지배도 추구한다. 가부장제가 착취해온 눈물의 힘은 개인의 것이기도 했지만 공동체의 것이기도 했다. 여성적 눈물과 남성적 눈물은 항상 같이 흘렀고, 성별화된 실천은 매우 자주 자신보다는 다른 가족 성원들과 가족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신파적 눈물의 호명은 각각의 개인은 물론, 각각의 가족을 겨냥하는 것이기도 했다. (71쪽)



이 눈물의 발원지는 자유주의적 배치다. 시장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적 경쟁의 장에 던져진 가족들의 눈물인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민족국가에 의해 포획된 눈물이기도 했다. 우리는 눈물의 민족 아니던가. 그래서 이 눈물은 한국적 파시즘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근대 사회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은 자유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세계의 모순으로부터 출발했다. 자유주의적인 신파적 눈물이 사회주의적 각성과 실천의 촉발점이 되었던 이유다. (112~113쪽)



이처럼 박정희의 귀환은 ‘신파의 추억’을 건드리면서 이루어졌다. 그날 전철에서 여인이 읽은 것은 박정희에 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고생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일까? 기본적으로는 젊은 시절 자신의 고생과 눈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는 박정희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흥한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심정적 공감과 신뢰는 물론 구체적인 정치적 지향도 담았다. 박정희체제의 파시즘에 대한 지지가 공공연히 표명됐다. 일부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단체에 가입하고 집회에 참석했다. 과거에는 관제단체와 관제집회에 동원된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그들은 좀더 순도 높은 파시스트가 됐다. (188~189쪽)



수일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파혼당한 뒤 의리 없는 세상에 치를 떤다. 그렇지만 그도 결국 그 세상에 뛰어든다. 돈이 기존의 모든 가치를 해체하고 대체하는 세상, 그곳의 이름은 바로 자유시장이다. 수일이 선택한 고리대금업에는 은유적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을 단일한 기준으로 환산할 때, 차이는 양으로만 측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동학의 궁극적인 표상은 자본의 증감이며,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은 가장 순수한 시장 행위다. 즉 대금업은 시장 자체를 표상한다. 그곳에서 수일이 살아남는 이야기는 자본가의 눈물겨운 탄생담이다. (272쪽)



요컨대 피도 눈물도 없는 준혁의 감정은 혈연적 눈물의 신파와 무관치 않다. ‘가치화’와 ‘축적’이 최종의 원칙으로 작용하는 경쟁의 장에 뛰어든 개인의 감정인 점에서 같다. 하지만 이성적 책략을 중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롭게 부상한 감정을 예시한다. 삼켜지기도 전에 이미 메말라 있는 눈물이다. 90퍼센트의 감정과 10퍼센트의 이성을 가진 조선인은 더 이상 없다. 윤치호가 꿈꾸던 세상이 비로소 도래한 것일까? (304쪽)



출판사 서평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20세기 한국을 바라보자.
거대한 눈물의 흐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목포의 눈물, 사랑은 눈물의 씨앗, 난 바람 넌 눈물…… 눈물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대중가요다. 가사에 눈물이 있거나 눈물의 비유가 있는 대중가요까지 포함하면, 아마 그렇지 않은 가요를 꼽는 게 빠를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대중가요가 눈물바람인 건 당연하다고? 그렇다면 “방아쇠를 잡은 손에 쌓이는 눈물/ 손등으로 씻으며 적진을 노려보”는 〈전선야곡〉은 어떠한가?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오는 갈라진 이 세상”을 노래하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어떤가? 이렇게 보면, 통념과 달리 눈물이 많은 쪽은 오히려 남성인 듯하다.



이처럼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는 온통 눈물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어째서 이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가요 같은 대중문화에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처럼 눈물을 흘렸던 걸까? 그 눈물의 흐름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넘쳤으며, 언제 잦아들었을까?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눈물과 정치 ―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흘려진 눈물과 현실에서 흐른 눈물을 엮으며, 20세기 한국의 문화와 정치, 감정과 이데올로기를 탐구한다. 이 책은 영화학자인 저자 이호걸이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 틀어박혀 1960년대 영화를 하루에 몇 편씩 보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청승맞아 견디기 힘들었던 그 영화들을 보다, 결국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었을 때, 대중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되돌려주고 이성에 비해 폄하되던 감정을 복권시키려는 이 기획이 가능했으리라.



눈물과 신파



눈물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때 그 액체를 흘리는 걸까? 저자는 한 생리학 연구를 인용한다. “정신적인 눈물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능이 있다. 눈물을 흘림으로써 불쾌한 상태, 즉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이다. (…) 눈물은 불쾌한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의 일부다.”(33쪽) 그런데 고통을 유발하는 존재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되돌리려면, 그저 견디거나 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불균형 상태의 해소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따라야 한다. “눈물을 흘린 뒤 우리는 종종 이전에 없던 강인한 의지를 갖게 되곤 한다. 이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천에 나설 힘을 준다. 실천이 고통스러워 의지가 약해질 수 있지만, 이때 다시 눈물이 흘러 실천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34쪽)



그렇다면, 한국인에게는 언제 이런 눈물의 실천력이 필요했을까? 너무나도 유명한 두 눈물,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홍도의 눈물과 영화 〈아리랑〉의 영진의 눈물에서 시작하자. 두 눈물 모두 가족의 위기 앞에서, 가족과 감응하며 흐른다. 그런데 다른 게 있다. 홍도의 눈물은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실천의 과정에서, 영진의 눈물은 살인이라는 적극적인 실천의 과정에서 흐른다. 눈물에도 성별이 있다. 이처럼 홍도와 영진의 눈물이 환기하는, 한국 근대 특유의 가족적 눈물의 흐름을 저자는 ‘신파新派’라 명명한다.



신파란 통속적인 예술에 대한 통속적인 비평 용어로 쓰이며, 미적인 열등함을 의미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명명을 통해 근대기 대중문화가 가지는 각별한 위상을 드러낸다. “근대사회의 중심에는 대중이 있고, 대중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구성되며, 그 대중문화의 중심에 영화를 비롯한 대중적 극문화가 있다. 근대적 눈물의 흐름을 신파로 명명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대중과 대중문화의 실질적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세계는 아래쪽에서 바라볼 때에야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58쪽)



신파는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로도 유용하다.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은 위기감을 선호한다. 위기감이 일단 눈물을 흘리게 만들면,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치는 눈물을 포획해 대중을 동원했다. 그렇게 흘러온 눈물을 ‘정치적 신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주의와 정치적 신파



한국사회를 흘러온 정치적 신파 중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민족주의의 눈물이다. 올림픽 시상대에 선 운동 선수들은 태극기와 애국가에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다. 소설 『청춘극장』의 주인공 허운옥의 눈물도 애국가와 함께 흐른다. 민족주의 신파가 유독 강하게 흐른 것은 의외로 액션영화, 그중에서도 항일 협객물이다. 이 하위장르를 대표했던 인물인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언제나 민족적 울분에 찬 신파적 눈물을 흘리며 일제를 대표하는 야쿠자와 대결했다.



우리가 눈물의 민족이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탄생 순간의 결핍이었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전쟁과 분단의 경험, 그리고 민족을 거대한 가족으로 보는 관념은 가족을 위한 실천과 민족을 위한 실천에 나설 힘을 눈물에 부여했다.



그러나 눈물은 부적절한 실천을 유도하는 힘 또한 갖는다. 이렇게 목적을 잃은 눈물 중 대표적인 것이 파시즘의 눈물이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신파적 눈물을 강력하게 환기하며 파시즘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박정희 정권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폭력정치를 밀어붙이며, 한편으로는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억압성을 감추기 위해 고통, 슬픔, 눈물을 이용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삶을 신파적 미감으로 가득 채워 제시했고, 수많은 ‘조국 근대화의 눈물’들이 이에 응답했다.



저자는 이 파시즘의 억압을 극복하고자 한 사회주의운동의 동력 또한 눈물이었음을 밝힌다. 한국 노동운동의 실질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전태일의 일기와 가장 급진적인 사회주의분파 사노맹의 전위였던 박노해의 시, 그리고 사회주의 문예물들은 온통 눈물에 젖어 있다. 자신을 사회주의운동으로 이끈 현실의 고통으로 인한 눈물, 사회주의운동에 뛰어듦으로써 자신과 가족이 겪게 된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다. 그런데 사회주의운동은 그저 눈물을 흘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물 흘리는 것에 비판적이기도 했다. 1930년대 프로문예에서는 눈물의 감상성이 리얼리즘의 이성적 시각을 훼손한다고 평가했고, 1980년대 후반 이후 사회주의 예술운동은 신파성에의 경도를 리얼리티의 결핍에 따른 관념화로 비판했다. 그러나 감상성을 중시하며 눈물을 마음껏 흘린 만주 항일유격대의 신파적 혁명문예가 훨씬 더 실전적이었고, 활동가의 품성론으로 눈물을 옹호했던 민족해방파(NL)가 더욱 강하게 운동 주체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감정을 찾아서



그런데, 20세기 한국의 민족주의와 파시즘, 사회주의까지 전부 눈물로 점철되게 만든 발원지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은 바로 자유주의적 배치, 시장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적 경쟁의 장에 던져진 가족들의 눈물이라고 말한다.



1910년대 번안되어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장한몽』의 눈물이 바로 자유주의에 던져진 개인의 눈물이다. 김중배의 돈에 홀려 혼약이 깨진 것은 구질서의 붕괴이며, 그 후 수일과 순애 각각이 추구하는 돈과 사랑은 자유주의적 사적 영역의 두 부문에 대응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신세계에서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에 던져진 개인들은, 그 경쟁에서 강자가 되지 못한 개인들은 신파적 눈물을 흘리거나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다. 국가가 독점했던 폭력이 다시 시장에 회수된 신자유주의 세계에서의 눈물은 급기야 《하얀 거탑》의 준혁처럼 고갈되고 만다. 내내 넘치도록 흘러서 정치에 포획되었던 눈물이 멈추었다. 이제 된 것일까? 그러나 심하게 긴장한 메마른 눈물샘은 ‘헬조선’을 저류하는 감정의 주된 표상일 따름이다.


흘러넘쳤던 눈물도, 고갈된 눈물도,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유주의의 너머,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감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는 공과 사의 새로운 배치, 열려 있는 공동체이며, 새로운 감정은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삶의 향유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감정적 역능, 웃음이다.



<평생학습타임즈 – 타임즈편집국 lltimes@lltimes.kr>

출처 - 평생학습타임즈, 장혜연IN문화피플,2018080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