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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편집부국장 김차순 박사의 타임즈 포커스] 학습자가 주는 보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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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국장 김차순 박사의 타임즈 포커스] 학습자가 주는 보물 #7

김차순(본지 제3편집부국장, 광명좋은학교 대표)

불식지공(不息之工)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조금 더 의미를 찾아보니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도 자꾸 거듭되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긍정적으로 표현해보면 잘 하지 못하던 것도 매일 꾸준히 노력하면 장인(匠人)도 될 수 있고 전문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해학습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분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한글을 깨우치는 것이 소원이었으므로 한글을 줄줄 읽고 쓰는 것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초기의 학습자이다. 그림 그리기는 평생에 처음이라며 ‘못한다’는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안하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만들기라도 시도를 해 보면 ‘선생님은 놀고 우리는 일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학습을 하는 햇수가 늘어 가면 자연스레 한글에만 초점을 맞추던 분들이 영어와 한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한글 이름을 자신있게 쓰기 시작하면 영어 이름을 크게 써서 나누어 드린다. 새벽에 일어나 외웠다고 그 다음날 바로 영어로 써서 보여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어려운 걸 왜 하느냐며 화를 내시는 분도 있고, 때로는 ‘학교에 오지 않겠다’며 그분들이 갖고 있는 무기를 휘둘러 진땀을 흘리게도 한다.


영어 이름 다음에는 한자 이름을 크게 써서 다시 나누어 드린다. 그나마 한자는 영어보다 거부감이 덜 하고 관심도 높다. 문해교재에 나오는 한자들은 계속 연습하도록 숙제도 드리고 수업시간에 반복해서 학습을 한다.


어느 날 학습자 한 분이 중국에 다녀오셨다고 사탕과 중국과자를 한보따리 갖고 오셨다. 잘 먹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그 학습자는 나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러시는지 그 학습자의 다음 행동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한글만 깨우쳐 주셔도 그 은혜 다 갚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친구들과 계모임에서 중국을 갔어요. 근데요 어느 산에 갔는데 그 산 이름이 천자산이에요. 하늘 천에 아들 자, 뫼 산이라고 딱 적혀져 있는데 내가 그걸 읽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더 크게 소리내어 우셨다. 그 학습자의 말씀을 옮기면 내용은 이렇다. 산 입구에 갔는데 한문으로 써져 있으니 친구들이 뭐라고 쓴거야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이 학습자가 천천히 그 글자를 읽었더니 모두가 놀라면서 어떻게 한문을 다 읽을 수 있느냐고 대단하다는 찬사를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산을 바라보는데 선생님 얼굴이 산만큼 크게 보여 절을 수십 번도 더 했다는 것이다.


영어도 싫다고, 한문도 싫다고 오직 한글만 잘 읽고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다른 학습자보다 더 떼(?)를 쓰셨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 후로 영어와 한문의 전도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두루두루 배우고 계신다. 도둑질만 아니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고 하셨고 배워 놓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고 하셨다.


성격이 워낙 급하신 분이라 처음 만나 공부를 할 때부터 “시간 아까운데 빨리빨리 좀 해 주세요.”를 자연스레 말씀하셨다. 글씨를 늦게 쓰시는 학습자들을 불안하게 만드셨고, 천천히 읽는 분들을 대신하여 혼자 읽어버리시는 분이었다. 수업을 마치면 번개같이 가셔서 기다림과는 관계가 먼 분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한 자씩 공부해서 언제 다 읽고 쓰느냐고 늘 조바심을 내시던 학습자였는데 글자들이 모여 바위를 뚫어 버린 것 같은 큰 경험을 하신 것이다.


이제는 이 학습자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생님, 했던 거 또 하고 또 하더라도 천천히 해 주세요.” 진도를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쓸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신다.


학습자들은 빨리 공부해서 세상을 읽고 싶어 하신다. 조바심을 내시며 언제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 그 분들의 불안감, 걱정, 염려의 마음을 읽고 다독거려야 한다.


‘천천히 하여도 늘 끊임없이 꾸준하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성과를 내게 된다.’며 한 걸음씩 함께 가자고 지속적으로 용기를 많이 드렸으면 좋겠다.



<평생학습타임즈 – 김차순 nam08-22@hanmail.net>

출처 - 평생학습타임즈, 김진규IN칼럼, 특집칼럼, 2018080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