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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more] ‘감응’과 미래 미술교육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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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more] ‘감응’과 미래 미술교육의 방향

도병훈(미술작가)

작가소개


대학 출강 및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미술작가로 활동 중이다. 서구 및 일본의 근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한국의 근현대미술에 대해 성찰하는 관점에서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다수의 글을 써 왔다. 주요 저서로는 『나의 너의 세계 미술(글을 읽다)』,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두리미디어)』 가 있다.



‘감응’과 미래 미술교육의 방향



현대인은 ‘자본주의라는 거대 조직에 행복이란 곧 쾌락’이란 말이 시사하듯, 이전 시대와는 크게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고도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문명은 인간이 원하는 상상을 현실로 가능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문제 상황을 초래하였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시공간적 거리가 좁혀진 반면에 그만큼 두 발로 걸으며 느낄 수 있는 시공간적 경험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반도체, 영상매체, 스마트폰, 인공지능 같은 인간이 발명한 제품이나 상품이 도리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수많은 사례의 포유류 동물 실험이나, 신경전달 물질의 전기화학적 작용까지 들여다보는 뇌 과학은 인간이 신체적 감각으로 불쾌하거나 유쾌하게 반응하는 생물학적 알고리즘의 존재로서 생존하고 번식해왔음을 입증한다. 생물학적 진화라는 변수가 없다면 인간의 신체적 특성이나 생화학적 기제에 의한 감각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없는 이유이다. 아무리 문화적 진화로 세상이 바뀌고 달라져도 미술이나 예술적 성취가 보여주는 감각적 표현이 중요한 이유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적 특성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의 총괄목표는 ‘다양한 미술활동을 통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느낌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미술작품의 가치를 판단함으로써 삶 속에서 미술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이다. 이전 교육과정과 달리 주목해야할 부분은 ‘핵심역량’으로, 학생들에게 중점적으로 길러주고자 하는 미술교과 역량이다. 이 역량요소, 즉 5가지 핵심역량은 미적 감수성, 시각적 소통능력, 창의·융합 능력, 미술문화 이해 능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다. 미술교과의 학교급별 목표로 초등학교는 기초능력, 중학교는 활용능력, 고등학교는 심화능력이다. 단계만 다를 뿐 모두 우리의 삶을 변형시키는 역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특히 중등교육이 입시 위주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외적으로도 불리한 여건인데다, 학교 현장 미술교육도 미술 교과만이 길러줄 수 있는 감수성의 풍성함이나 예술적 성취와는 거리가 먼 기능적 훈련에 치중하거나, 정보 범람의 영향인 듯 내용은 빈곤하면서도 미술사적 상식이나 특정 작가의 천재성을 스토리화 하는 감상 수업으로 오히려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한다.



현대의 과학이나 학문적 기반이 근대의 실증적 · 과학적 진리에 대한 한계와 회의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왔듯, 현대미술은 19세기 후반 이래 20세기의 예술가들이 자율적으로 제기해온 문제의식, 즉 근대의 미적 · 예술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물음의 소산인 실험적 원리와 새로운 방법으로 성립해왔다. 따라서 미술 교육 또한 이러한 새로운 존재방식을 갖는 미적 가치나 특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예술, 과학, 철학을 우리 삶을 변형시키는 세 가지 사유의 양식으로 본 20세기 후반의 대표적 사상가중 1인인 질 들뢰즈1)의 예술론을 참조하는 것도 미술수업의 방향 성찰에 도움이 된다. 들뢰즈에 의하면, 예술이 무엇인지는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예술은 조직화하고 의도를 가진 관점들로부터 자유로운, 특이한 감응들과 지각들을 제공한다.’는 관점으로 보았다. 예술은 단지 제도들이나 화랑들에서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믿었던 시대에, 들뢰즈는 예술의 힘이 감응이자 영원히 새로운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각 이론에서 가장 근본적인 차원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 그 자체의 역능을 가리키는 감응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감응’은 자신이 폴 세잔의 그림 및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심도 있게 분석한 『감각의 논리』을 통해 잘 알 수 있다.2) 그에게는 폴 세잔이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감응의 지도’였다. 이런 차원에서 들뢰즈에게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말하는 비평(감상)은 바로 작품의 생명 유형, 형세를 진단하는 것이니, 비평가는 마치 임상의(臨床醫)와 같다.

성인의 영원한 스승인 어린아이의 그림은 인간의 원초적 감각을 잘 드러내며, 그만큼 미술교육의 핵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순수한 동심으로 그린 참신한 어린아이의 그림은 모방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 1>을 보면 아이가 숲 속 체험을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특한 선과 색채로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림 2>는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여 들여다본 놀라운 관찰력과 함께 또 다른 생명체인 곤충 세계를 경이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성인을 놀라게 하는 어린이 회화는 단지 대상의 형태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유전자의 산물인 감각과 두뇌의 작용을 발휘하여 회화적 질료에 접근하여 점, 선 및 색으로 가능한 놀라운 자기 표현력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작품의 유일한 기준은 스스로의 발견과 상상력으로 표현 가능한 새로운 세계이다. 여기서 성인의 역할은 더 잘 관찰할 수 있게 하고, 좀 더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현시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면서 그만큼 다양한 체험을 차단하고 수학과 영어 같은 교과 공부 외에 하루 대부분을 전자기기로만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미술로 가능한 감응과 표현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참신한 시각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어린이 그림은 새삼 인류가 추구해온 미적, 예술적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상 획기적인 성취를 이루어낸 미술 작가들은 어린 아이의 호기심과 유희성을 잃지 않은 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이전과 다르게 세상 보기를 제시한 예술적 성취를 보편적 가치로 공유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미술의 역능은 역시 감응할 수 있는 미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자기표현 능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비판적 ‘감상 능력’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처럼 더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는 열린 감성, 또는 더 잘 느끼는 감각(감응)으로 자신을 잘 표현하는 능력과 그것을 더 잘 느끼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과가 미술이라면 미래 미술교육의 방향도 자명하지 않은가?



1) 들뢰즈에 의하면 과학은, 우리가 ‘사실들(facts)’이나 ‘사태들(states of affairs)이라고 관찰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actual) 세계에 대한 일관적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철학은 어떤 고유한 관찰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잠재적(virtual)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역능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고 경험하는 넘어선 개념을 창조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예술은 감응들(affects)과 지각들(percepts)을 창조한다고 본다. 이러한 감응은 한계 지워진 일상적 의견과 다른 영역이다. 예들 들어 어떤 사람이 빛, 소리 혹은 감촉과 같은 자료들을 경험할 때, 대개 그것을 일상적 개념에 종속시킨다. 그러나 예술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여 질서 잡힌 경험의 흐름으로부터 그것의 특이성을 해방시킨다.


2) 들뢰즈는 세잔의 그림이나 베이컨의 그림을 ‘판에 박힌 것들’과의 싸움에서 생성된 돌발적 표현으로 보았다. 특히 베이컨의 경우 추상회화처럼 시각적인 길도 아니고, 액션 페인팅처럼 손 적인 길도 아닌 제3의 길을 따른다고 보았다.



<평생학습타임즈 – 타임즈편집국 lltimes@lltimes.kr>

출처 - 평생학습타임즈, 김진규IN문화피플,2018080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