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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생학습타임즈 편집부국장 김차순 박사의 타임즈 포커스] 학습자가 주는 보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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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타임즈 편집부국장 김차순 박사의 타임즈 포커스] 학습자가 주는 보물 #10

김차순(본지 제3편집부국장, 광명좋은학교 대표)

범사(凡事)에 유인정(留人情)이면 후래(後來)에 호상견(好相見)



사람끼리의 관계맺음이 쉽지 않음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어렸을 때는 상대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해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이해관계를 생각하고,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가늠하며 관계를 형성해 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떤 이는 소위 힘 있다고 하는 사람과 동석하면 밥도 사고, 차도 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절대 지갑을 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또 어떤 이는 연장자이면서 선배라는 입장에서 밥은 늘 자신이 사야한다며 스스럼없이 계산을 한다. 전자는 밥을 사 주고 꼭 인사를 듣기를 원하고 후자는 인사를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정서로는 밥을 한 번 얻어먹었으면 다음에는 대접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을 진다. 특히 먹을 것이 없어 힘든 시절을 겪었던 우리 학습자들은 그 기본적인 것들은 꼭 지키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콩 하나도 열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고 여기시는 학습자들이 다양한 먹거리들을 학교에 갖고 오신다. 사탕, 빵, 옥수수, 삶은 계란, 심지어 부침개에 막걸리까지 시장의 먹자골목을 연상시킬 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 보통 새 학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의 어색함이 사라지면 함께 나누어 먹기의 향연이 시작된다.


지금은 몸이 편찮으셔서 더 이상 학교에 오시지 못하는 인심이 넘치는 학습자가 계셨다. 서울의 신정동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오셨고 늘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떡과 밥을 차례로 갖고 오셔서 학교 전체가 나누어 먹는 잔치 같은 날이 되었다. 따뜻해야 맛이 좋다며 학습자의 가족이 쉬는 시간에 맞추어 교실에 갖다 주셨다. 떡은 먹고도 남아 같이 공부했던 학습자들은 떡을 싸서 갖고 가셨다. 밥은 늘 밤, 대추 등을 넣어 지은 영양찰밥으로 해 오셨고 국에 기본적인 반찬이 예닐곱 개는 되었다. 이렇게 하시고도 대접을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또한 학습자들을 자주 본인의 집에 모시고 가서는 융숭한 식사 대접은 물론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학습자들이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면 오히려 본인이 갖고 온 것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학습자의 말씀을 듣고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나는 작은 것들을 나누었는데 잘 먹어주니 그 복들이 나한테 옵니다.” 하시며 웃으셨다. “큰 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제 자리를 다 잡아 주니 고맙고요. 이렇게 모자란 나를 떠받들어주는 남편이 있으니 늘 감사합니다.” 그 복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웃으며 나누어 먹었으니 복이 모두의 가슴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또한 정기적으로 얻어먹는 우리들이 미안해할까 봐 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아무런 대가없이 주셨으니 그 분의 선한 마음과 정성은 하늘에 충분히 닿았으리라.


마음에 없는 일을 여러 번 하기는 힘들다. 내키지 않는 일을 계속하려면 짜증이 묻어나거나 얼굴을 찡그리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남편, 아들, 며느리가 업무 시간에 학교까지 떡과 밥을 실어다 주는 것도 흔히 않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학습자가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한 그 마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혼자 잘 먹고 편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이다. 지금 당장은 내 주머니의 것이 없어진다 하겠지만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큰 득으로 돌아옴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움켜쥐려고 하면 큰 것을 잡지 못한다. 나를 위해 쓰는 것은 잘 하지만 남을 위해 쓰는 것은 아깝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뿌려놓은 많은 인심의 씨앗들이 나에게, 자손에게 열매로 돌아옴을 기억하자. 그것은 곧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작은 디딤돌이다.


‘남에게 늘 인정을 베풀면 언제 누구를 대하든지 걱정할 게 없다.’



<평생학습타임즈 – 김차순 nam08-22@hanmail.net>

출처 - 평생학습타임즈, 김진규IN칼럼, 특집칼럼, 201808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