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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생학습타임즈-[편집국장 김창엽 박사 칼럼-34] 위록지마(謂鹿止馬)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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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평생학습타임즈 편집국장, 한국평생교육실천전략연구소장)

‘책을 읽는 데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라는 뜻을 가진 위편삼절(韋篇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과 같은 시각으로 ‘가죽으로 포장한 종이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세 번이나 가죽포장이 닳아 끊어졌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래 전에 책은 대나무쪽, 즉 죽간에 글을 기록하고, 그것을 가죽끈으로 묶어 이은 것이었다. 그 죽간을 지속적으로 넘기다 보면 가죽끈이 쉽게 닳아 헤졌을 것이다.
오래 전 중국의 문헌은 죽목(竹木)과 겸백(縑)이었다. 죽목이란 죽간을 가죽끈(革)이나 실(絲)로 묶어(篇連) 만든 것이다. 겸백이란 비단에 붓으로 쓴 것을 둘둘 말은 것이다. 죽목으로 된 책은 편(篇)이란 양사(量詞)로 세고, 겸백은 권(卷)이란 양사로 센다. 책(冊)이라는 한자의 자형이 죽간(竹簡)을 묶은 것이다. 고전(古典)이라고 할 때의 전(典)자도 마찬가지다. 전(典)은 책(冊)의 큰 것이다.
동양사상과 관련하여 고대 중국사람들이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고, 그리 생각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 사람이 지금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의 세계가 책을 많이 읽고 엄청난 정보를 얻는다. 지금의 정보의 양은 그 당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게 많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책의 경우 한 쪽 당 글자의 수도 많다. 당시 죽간 하나에 쓰여진 글자는 7-8개 였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독서의 양이 독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문장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 독서의 가치를 만드는 한 방법이다. 물이 담겨있는 컵을 보고 "물이 반 밖에 없네"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 다원성의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이 컵의 반쯤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이후에 관점에 따른 주장이 나와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글을 읽을 때 무릇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글의 뜻이 무엇인가를 새겨야 한다. 글자를 읽는 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다음, 글이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짚어야 한다. 글의 출처가 어딘가를 살펴야 한다. 끝으로, 글의 내용이 맞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어떤 글이라도 그것이 옳바른지 아닌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세상에 떠도는, 또는 우리를 윽박지르는 말과 글,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뜻이 무엇이고, 믿을 수 있는 것이며, 내용이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는, 누군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관점의 틀, 즉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말과 글, 현상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합리성이 아닌 합목적성만 존재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때, 보이는 현상을 짚을 때,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다.
평생교육에서 HRD와 직업능력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4차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만을 강조하는 까닭을 톺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위록지마(謂鹿止馬)가 횡행하는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출처-[평생학습타임즈 2017년7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