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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생교육은 ‘소비’되고 유행을 따르는 학습인가 시리즈 1] ‘동화읽는 어른모임’ 과 평생교육
파일 university-105709_960_720.jpguniversity-105709_960_7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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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은 ‘소비’되고 유행을 따르는 학습인가 시리즈 1]
‘동화읽는 어른모임’ 과 평생교육

오명숙(본지 객원논설위원, 평생교육학 박사)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현실에서 평생교육은 어디만큼 왔을까. 평생교육은 일상에서 어떻게 감지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런 질문 속에서 평생교육의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최근의 내 생각이다. 평생교육의 지향점, 시민 ‘됨’의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다. 이 글에서 나는 평생교육을 직무로 삼고 있는 사람들부터 평생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학습자들과, 평생교육 ‘사업’을 행하는 사람들까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교육이 선 ’여기, 이 곳’에서 평생교육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더 나은 삶’일 것이다. 그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는 제각각 다르다. 평생교육이 누구는 ‘부자되자’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인맥만들기’라 한다. 최근에는 ‘학습동아리’공모에 지원하라 한다. 평생교육전공을 한 사람으로서 헛갈린다.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나는 평생교육사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평생교육사는 우리사회에서 필요하기는 한 걸까. 그런 혼란 속에서 글을 써보자 마음 먹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궁금했다. 평생학습타임즈가 내 글을 실어주겠다고 했다. 반가웠다. 부족하지만 평생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연재에서 다룰 글은 세 주제다.



첫째, 평생교육은 ‘소비’되고 유행을 따르는 학습인가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둘째, ‘무늬’가 되어버린 평생교육사, 그 뒤에 등장한 “~이터 족”의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셋째, 공모(公募)와 공모(共謀), 평생교육의 공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따져본다.



1999년 평생교육법은 다 알다시피 사회교육법을 받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지역만 보면 다섯 도서관이 평생교육의 ‘거점기관’으로 탈바꿈되었다. 평생교육이 도서관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도서관의 책과 정보는 평생교육의 프로그램과 결합되면서 작가와의 대화, 책 읽는 학습동아리가 되어 지속적으로 도서관의 학습‘주인’이 되길 바랐지만, 그것이 뜻대로 잘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 지역만의 평생교육프로그램 개발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그 ‘지역만의’ 평생교육프로그램은 또 어떤 것인가. 이들 프로그램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평생교육의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에서 평생교육은 이미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처럼 ‘공부는 좋은 것이여’가 된 지금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자율학습이 아니라 타율학습이 된 것처럼 보인다.
평생학습 현장에서 강의는 다양해졌으나 강의는 대부분 ‘소비’되는 형태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그 프로그램들이 백화점 문화센터나, 동사무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나 대학평생교육기관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평생교육은 확실히 ‘명강사 족보’를 만들기는 했다. 그 과정은 ‘돈 많은’ 지자체에서 시작되었다. 지자체에서 평생교육 사업은 강좌 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되는 소위 ‘탈렌트’ 강사를 초청해 지역주민들을 물들게 했다. 그것이 평생교육의 근본적인 책무였던가. 그 인기 강좌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렇게 질문을 해 놓고 보니, 이미 평생교육은 이벤트 학습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슬픈 현실이다.



‘동화읽는 어른모임’ 과 평생교육



평생교육법이 제정되던 시절, 나는 사실 199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평생교육법 반대 시위에 참석했다. 당시 나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입장을 대표해 이 법제정에 반대하는 자리에 앉았다. 이 단체는 오랫동안 도서관의 공공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어린이 책을 연구했다. 그 결과를 도서관과 공유하고 도서관이 공적책임을 다하도록 지원하고 협력했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학습동아리에 소속되어야 했다. 이들을 ‘동화읽는 어른모임’이라 불렀다. 이 단체 회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도서관의 책을 모니터링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되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평생교육법이 도서관의 핵심기능을 강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혁신적인 프로그램 기획이 있다하여도 도서관의 ‘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대하게 되었다. 당시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입장은 “평생교육법을 반대한다. 도서관은 도서관의 제 기능을 해 주기를 바란다. 도서관은 전문직 사서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들과 도서관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서관의 제 역할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장서를 잘 구비하고 사서가 전문적으로 이용자에게 필요한 책을 안내하는 것, 그것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평생교육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평생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은 공동체에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지역도서관에서 ‘동화읽는 어른모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서관과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공성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1999년 당시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했던 활동보다 2017년 현재의 평생교육이 그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 내고 있다고 보지 못하겠다. 이 ‘동화읽는 어른모임’의 구성원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전혀 받지 않았다. 당시 이들은 자발적으로 회비를 냈고, 한주마다 읽어야 하는 책을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기보다 스스로 구입해서 읽었다. 도서관은 책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책을 만드는 곳 즉 작은 출판사들도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책을 낼 수 있도록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소비자로서의 책임을 이행한 것이다. 나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동화읽는 어른모임’의 활동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평생교육계에서 ‘학습동아리’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동화읽는 어른모임’모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연구하고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면서 도서관의 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런 ‘터줏대감’을 만드는 일이 평생교육이 아닐까 싶은데, 평생교육의 학습동아리 사업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평생학습타임즈 – 오명숙 museumschool@naver.com>

출처-평생학습타임즈, 특집칼럼, 201801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