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NS공유하기

해당 컨텐츠 트위터에 추가하기 해당 컨텐츠 페이스북에 추가하기

게시판 보기
제목 [편집국장 김창엽 박사 칼럼-62] 헌법에 명기된 평생교육과 식민지근대화론
파일
[편집국장 김창엽 박사 칼럼-62]
헌법에 명기된 평생교육과 식민지근대화론

김창엽(본지 편집국장, 한국평생교육실천전략연구소장)

일반적으로 도로나 철도가 많이 놓이면 해당지역이 발전한, 또는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것으로 파악한다. 도로나 철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경제적 발전과 물질적 성과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터하여, 도로나 철도 보급율 상승을 근대화의 척도로 살피는 관점도 있다.



지금도 가끔 등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이 관점을 차용한다. 일제강점기에 도로와 철도 보급율이 높아졌다. 이는 식민지 시기, 즉 일제강점기가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근거로 주장된다. 식민지근대화론의 허울을 벗겨 실상과 의도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당시 일제에 부역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부류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정당성을 제공하는 데 기능하기 때문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 수시로, 소멸되지 않고 제기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살피는 데 있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새삼 짚어보고, 삶의 식민화가 가져오는 비인간화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따져보는 정도까지 필요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도로와 철도 보급이 확대된 이유를 따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제강점기에 도로와 철도가 보급률이 높아진 것은 이 땅의 문물을 발전시키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쌀과 광물 등 이 땅에서 나는 것들을 보다 빨리, 많이, 제때 가져가기 위해서 도로와 철도를 놓은 것이다. 그 도로와 철도를 통해 탈취되는 것이 많을수록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깊게 도탄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살펴야 한다.



평생교육 관련 모임이나 글에서 1980년에 개정된 헌법에 '평생교육 진흥'이 명기된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판단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의 시각으로 헌법상의 문자만을 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법은 역사적, 시대적 소명을 기반으로 구성되고 개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개정사를 살펴보면 특정세력이 자신들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강제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80년에 개정된 헌법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반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 자격소지자(검정고시 합격자) 중 대학진학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입시학원과 대학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고등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그런데 헌법에 평생교육이 명기된 것이다. 그 이유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헌법에 명기되 평생교육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민망하게도 1980년 개정된 헌법에 평생교육이 명시된 까닭을 직접 밝힌 자료를 본 적이 없다. 하여 교육의 성격을 짚어 추론할 수밖에 없다. 프레이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중립을 지키는 교육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새로운 세대를 현 제도의 논리 속에 흡수하여 순응하도록 만드는 도구노릇을 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현실에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해서 자기세례를 변혁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특히 전자의 경우 현재를 길들이고 사람들을 길들여서 교육을 활용하는 세력이 바라는 미래가 이 길들여진 현재를 재생하도록 획책한다. 예를 들어, 제도학교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제도학교 이후의 시기 동안에 지속적으로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람들을 여기에 순응시키려고 할 때, 생애 동안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평생교육이 썩 쓸 만한 도구로 여겨졌을 법 하다.



이런 맥락에서 1980년 개정헌법에 명기된 평생교육은 식민지근대화론과 비슷한 의도를 가졌을 위험성이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주도세력의 성격에 비추어 봤을 때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추론이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실을 판단하고 이야기할 때, 그 사실이 시대상황과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억압을 받는가 하는 것을 짚어야 하고, 이것이 당시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사회적 상태와 인간적 상태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평생교육이 헌법에 기술되는 일이 왜 일어났는가를 살피고, 이를 기반으로 작금의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평생학습타임즈 – 김창엽 gksakel@hanmail.net>

출처-평생학습타임즈, 특집칼럼, 20180131일자